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던 3D 작업
한참 패션 쪽에 관심이 생겨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CLO3D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유튜브에서 보면 다들 슥슥 클릭 몇 번으로 옷을 만들고, 원단 질감까지 예쁘게 뽑아내길래 나도 해볼 만하겠다 싶었다. 사실 건축 프로그램도 조금 다뤄본 적이 있어서 공간 설계나 3D 모델링이 완전히 낯설진 않다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건축은 선을 긋고 벽을 세우면 끝인데, 이건 옷감의 물리적인 성질까지 고려해야 하니 차원이 달랐다. 처음 프로그램을 켰을 때 그 텅 빈 가상 공간이 너무 막막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국민내일배움카드로 듣는 전문 과정도 6월 개강으로 꽤 있던데, 그냥 혼자서 해결해보겠다고 덤빈 게 화근이었나 싶기도 하다.
패턴 조각 맞추다 지쳐버린 오후
원단을 재단하고 봉제하는 과정이 진짜 고역이다. 2D 패턴 창에서 조각들을 배치하고 봉제선을 하나하나 이어줄 때마다 컴퓨터가 버벅거리는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마다 괜히 사양이 낮은 노트북 탓을 하게 된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권장 사양을 꽤 탄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작업 중에 시뮬레이션 버튼을 누르고 옷이 툭 떨어지는 모습을 기다릴 때면 속이 탄다. 길게는 1분 가까이 걸릴 때도 있는데, 그동안 내가 제대로 봉제선을 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잘못 이으면 옷이 산산조각이 나거나 기괴하게 꼬여버리는데, 그걸 다시 수정하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다. 누가 옆에서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펫패션 연구까지 나온다는데 나는 왜 기본 티셔츠 하나도 힘든가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채영주 교수님 연구팀에서는 반려동물 의복압까지 분석하려고 이 툴을 쓴다고 하더라. 개들 옷이 사람 옷보다 훨씬 작으니까 만들기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움직임이나 소재의 탄성 때문에 더 예민하게 다뤄야 한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이제 겨우 사람 기본 티셔츠 패턴을 하나 띄워놓고 소매 위치 잡느라 씨름하고 있는데, 가상 피팅 시스템까지 써서 과학적인 분석을 한다는 게 참 대단해 보였다. 국립부산과학관에서도 이 툴을 활용한 전시를 한다던데, 나는 단순히 디자인 시각화하는 것도 벅차서 쩔쩔매고 있으니 현타가 좀 왔다. 전문가들은 이 툴로 거의 미래 의복 연구까지 한다던데, 나는 아직 원단 물성치 수치 입력하는 것도 헷갈려서 인터넷 검색을 계속 끼고 산다.
데이터 분석보다 더 어려운 가상의 현실
브랜드 창업을 하려면 이런 디지털 패션 제작 능력이 필수라길래 무작정 시작했는데, 점점 본질을 잊어가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옷을 만들 때 그냥 손으로 그리고 자르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숫자와 씨름해야 한다. 3D 스캐닝까지 해서 모델에 입히는 과정도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단순한 모델링인가 아니면 디지털 노동인가 싶기도 하다. 애프터이펙트로 영상 편집할 때보다 더 집중력이 필요하고, 눈은 훨씬 침침해진다. 가끔은 그냥 천 떼다가 손바느질하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물론 그렇게 하면 옷의 구조를 바꾸거나 패턴을 수정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멈추기엔 아쉬운 이유
일단 결제하고 시작한 라이선스 기간이 몇 달 남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붙잡고 있긴 하다. 가격대가 아주 저렴한 편은 아니라서 본전 생각에라도 더 만져보게 된다. 가끔 내가 의도한 대로 원단이 찰랑거리며 떨어지는 핏을 볼 때면, 그 희열 때문에 또 몇 시간을 더 앉아 있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뭐라고 싶지만, 막상 화면 속에서 완성된 옷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묘한 성취감이 든다. 사실 이걸로 당장 대단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거나 취업을 할 건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디자인한 옷을 직접 뽑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다. 지금은 그저 툴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참고는 있는데, 다음번에는 조금 더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찾아봐야 하나 싶기도 하다. 독학으로 하기에는 알아야 할 변수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오늘도 나는 봉제선 하나를 잘못 이었나 싶어 뒤로가기 버튼만 연신 누르고 있다.

제가 패턴을 자를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정확하게 자는 게 쉽지 않아서, 항상 낭비되는 천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