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냄새와 낯선 도구들의 기억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을지로 근처의 건축도장학원을 기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창고 인테리어를 직접 해보겠답시고 호기롭게 덤볐던 시기였다.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인테리어라는 게 그저 예쁜 가구 배치하고 벽지 새로 바르는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창고라는 공간을 손대려고 보니, 천장 마감부터 바닥 수평 맞추는 것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더라. 인터넷에서 본 3D 인테리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인 아키스케치 같은 거로 대충 평면도를 짜봤는데, 화면 속의 깔끔한 공간과 현실의 곰팡이 핀 벽지는 차원이 달랐다. 건축도장기능사 자격증을 따볼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던 건, 순전히 페인트 도색 비용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게 견적이 나와서였다. 대충 알아보니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면 기본 몇백만 원은 우습게 깨지는데, 직접 하면 재료비만 3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면 가능할 것 같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견적서와 현실 사이의 간극
상가 인테리어 견적서를 받아보고는 입이 떡 벌어졌다. 내가 생각했던 예산과는 꽤 차이가 컸다. 평당 가격도 문제지만, 목공 작업이 들어가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셀프 시공을 고민하게 되는데, 그게 또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거실에 작은 홈바 하나 만들겠다고 시작했던 작업이 어느새 천장 시스템 에어컨 마감 문제로 번지더니, 결국 전문가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왜 그렇게 ‘마감’에 집착하는지, 처음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다. 하지만 직접 붓을 들고 페인트칠을 해보니 알겠더라. 붓 자국 하나 남는 게 얼마나 거슬리는지, 모서리 부분이 뭉치면 얼마나 보기 싫은지 말이다. 건축 설계사무소 지인에게 물어보니, 공간 디자인은 결국 디테일 싸움이라고 하더라. 근데 그 디테일을 챙기는 게 일반인에겐 정말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퇴근 후의 작업은 왜 더 힘든가
직장을 다니면서 저녁 시간을 쪼개 인테리어 작업을 한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다. 요즘 워크스피탈리티라는 말이 유행이라던데, 사무실 인테리어를 호텔처럼 편하게 만든다는 그 개념이 참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내 창고는 호텔은커녕 작업장 느낌도 제대로 안 나는 어설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주말에 3시간씩 틈틈이 시간을 냈는데, 막상 작업 시작하면 정리하는 데만 1시간이 걸린다. 그 와중에 마실 커피 한 잔 사러 테라로사 같은 곳에 가면, ‘아, 이렇게 세련된 공간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 걸까’ 싶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공간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은 너무나 완벽해 보이지만, 그 밑에 깔린 수많은 시행착오와 수정 과정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겐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3D 시뮬레이션의 함정
요즘은 2D 이미지로만 대충대충 소통하는 시대가 아니라고들 한다. AI 플랫폼을 이용해 3D로 시뮬레이션해보면 마치 내 공간이 금방이라도 럭셔리하게 변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 역시 그런 유혹에 넘어가서 인테리어 할부 서비스까지 알아봤던 적이 있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보는 것과, 실제로 그 육중한 가구를 옮기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한번 위치를 잘못 잡으면 다시 옮기는 데만 반나절이다. 특히 천장 시스템 에어컨처럼 전문적인 설비가 들어가는 작업은 시뮬레이션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배관 위치가 바뀌거나 천장고가 안 맞으면 설계 변경을 해야 하는데, 그건 초보자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결국은 미완성인 채로
지금도 창고 인테리어는 절반 정도 완성된 상태로 멈춰 있다. 벽면 페인트는 절반만 칠해져 있고, 조명은 아직 배선 공사 중이다. 처음엔 완벽하게 다 끝내겠다는 열정이 가득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정도면 그냥 쓰지 뭐’ 하는 안일함이 고개를 든다. 건축도장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따려고 했던 그 뜨거웠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사실 가끔은 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전문가를 불러서 한꺼번에 맡기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막상 다 끝내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아 무작정 버티고 있다. 인테리어라는 게 참 묘하다. 결과물보다는 그 과정에서 느끼는 짜증과 성취감이 뒤섞인 묘한 시간들이 더 길게 기억에 남으니까. 다음에 다시 이런 일을 하게 된다면? 글쎄, 아마도 또 직접 하겠다고 덤벼들 것 같다. 그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