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마감재와 조명에 질려버린 순간
얼마 전에 성수동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를 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낮은 테이블, 그리고 눈이 좀 아플 정도로 밝은 매입등. 사실 이런 스타일이 한때는 세련된 상업공간의 상징처럼 여겨졌지 않나. 그런데 막상 내가 직접 작은 공간을 꾸며보려고 도면을 잡고 자재를 고르다 보니 이게 왜 이렇게 다 비슷하게 흘러가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예산이라는 게 뻔하다. 평당 인테리어 비용을 2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로 잡고 시작하면,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견적을 내밀 수밖에 없다. 특이한 마감재를 쓰거나 구조를 조금이라도 다르게 짜려고 하면 추가 비용이 며칠 만에 수백만 원씩 껑충 뛰니까.
63빌딩 리뉴얼 소식을 듣고 든 엉뚱한 생각
최근에 한화생명 63빌딩 상업시설이 리뉴얼됐다는 기사를 봤다. 아일랜드 빈티지 커피 같은 브랜드가 들어오고, 전체적으로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고 하더라. 대기업이 하는 리뉴얼이야 당연히 수십억, 수백억 단위가 들어갔을 테니 일반 자영업자의 관점에서 비교할 건 못 된다. 그런데 기사 사진을 보면서 든 생각은 ‘저런 화려한 공간들도 결국 5년 뒤에는 또 유행에 밀려 리뉴얼을 고민하겠지?’ 하는 것이었다. 상업공간이라는 게 참 허무하다. 돈을 쏟아부어서 완벽한 조화와 동선을 만들어놔도, 결국 사람들의 발길은 새로운 컨셉이나 더 자극적인 시각적 경험을 찾아 금방 옮겨가기 때문이다. 한강변과 연결된 문화 정원이라니, 말은 참 좋은데 그 안을 채우는 알맹이들이 얼마나 버틸지 괜히 내가 걱정이다.
주방 설비가 인테리어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예전에 아는 분이 호텔 레스토랑 주방 쪽 설계를 도와달라고 해서 잠시 관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느낀 건데, 결국 상업공간의 인테리어는 심미적인 게 아니라 생존이더라. 손님들이 앉아서 사진 찍기 좋은 예쁜 의자보다, 주방 동선이 10cm라도 꼬이면 그날 매출이 바뀐다. 요즘은 무슨 팝업 스토어 하나를 해도 벨리곰 에디션 같은 걸 진열하면서 체험형 공간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런 일시적인 설치물들을 보며 든 생각은 ‘과연 저게 지속 가능한 공간인가’였다. 인테리어 대학원 입시에서 다루는 거창한 공간 철학보다, 당장 물이 잘 빠지는 배수구와 냄새를 잡아주는 환기 시스템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실무를 조금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남는 건 무엇인가
지난주엔 동네에 새로 들어온 식당에 갔는데,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30분 만에 나왔다. 디자인은 기가 막히게 예쁜데 등받이가 없어서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 회전율을 높이려는 전략인지, 아니면 그냥 디자인에만 몰두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같은 단골이 되기엔 글렀다. 요즘 인테리어는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단면을 제공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나도 만약에 작은 샵을 차린다면, 사람들에게 편안한 기억을 남기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당장의 트렌드에 굴복해서 다들 하는 그 ‘노출 콘크리트에 간접 조명’ 박스 안에 갇히게 될까. 며칠 전부터 이런 고민만 계속하고 있는데, 딱히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답이 없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