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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시작된 강치 미니어처 작업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강치 이야기를 듣고 덜컥 시작한 무모한 작업

며칠 전 뉴스를 보는데 경북 쪽에서 독도 강치를 캐릭터로 부활시켜서 넷플릭스까지 나갔다는 기사를 봤다. 예전에 울릉도 여행 갔을 때 멸종된 강치 동상 앞에서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나서 그랬는지, 문득 내 방 한구석이 너무 휑해 보였다. 마침 요즘 퇴근하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무료했는데, 갑자기 뭐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학원을 다녀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유행했던 음식 미니어처 만들기 세트를 사서 낑낑대며 만들었던 기억을 더듬어 디오라마를 직접 제작해 보기로 했다. 처음엔 거창한 계획도 없었다. 그냥 강치 모형 몇 개 놓고, 울릉도 바닷가 비슷한 느낌만 내면 되겠지 싶었다.

재료를 구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문제는 재료였다. 찰흙이랑 물감이야 문구점에서 쉽게 샀는데, 제대로 된 강치 모형은 시중에 파는 게 없었다. 결국 새 모형을 개조해서 깎고 다듬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적당히 비슷한 크기의 새 모형을 3만 원 정도 주고 샀는데, 받아보고 나니 이게 생각보다 너무 단단해서 조각도로 깎다가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밤마다 넷플릭스 틀어놓고 멍하니 깎고 있었다. 생각보다 디오라마 제작이 취미라고 하기에는 노동 강도가 세다. 바닥에 깔 바다 표현용 레진은 냄새도 독해서 환기하느라 창문을 열어놨더니, 밤공기가 차가워서 감기 기운만 들었다. 이런 거 보면 예전엔 어떻게들 재미있게 만들었나 싶기도 하다.

어설픈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

작업을 하다 보니 캐릭터 라이선싱이나 전문적인 캐릭터 상품이랑은 거리가 먼, 그야말로 ‘나 혼자 만족하는’ 괴상한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게, 어설프게나마 강치 모양을 잡고 나니까 이제는 주변 환경이 눈에 밟힌다. 파도는 어떻게 표현할지, 바위는 어디서 가져와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카톡 이모티콘 구경하듯 캐릭터 표정을 연구하게 된다. 사실 그냥 예쁜 소품 하나 사는 게 시간도 아끼고 돈도 아끼는 길이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이미 5만 원 정도를 재료비로 썼다. 그냥 깔끔한 기성품을 살걸 그랬나 하는 후회와,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게 있다는 이상한 뿌듯함이 계속 오간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방구석 취미의 늪

일러스트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고, 그림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캐릭터 얼굴 그리는 게 제일 어렵다. 붓 끝이 떨려서 강치 눈을 점으로 찍었는데, 이게 좌우가 맞지 않아서 계속 덧칠하다 보니 눈 주변이 뚱뚱해졌다. 다시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하다가 새벽 2시가 넘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집착하나 싶다. 연애 예능이나 보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길드마크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던 내가 캐릭터 서사를 부여하겠다고 끙끙대고 있는 게 웃기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걸 완성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도 든다.

끝맺음 없는 이 작업이 가져다준 것

솔직히 말하면, 벌써 좀 지친다. 처음에는 멋진 디오라마를 만들어서 방에 전시해야지 했는데, 이제는 그냥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재료들이 처치 곤란이다. 남들이 보면 그냥 쓰레기 더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 퇴근하고 오면 다시 붓을 잡게 된다. 멸종했다는 강치를 내 손으로 다시 살려내겠다는 거창한 의미는 애초에 없었다. 그냥 조용히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다 만들고 나면 거창하게 사진이라도 찍어서 올릴지, 아니면 그냥 조용히 서랍 속에 넣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마 후자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작업대 위에 굳어버린 물감 자국들을 보면서, 다음에는 그냥 사서 쓰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한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강치 얼굴이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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