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장으로 벽을 채우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
거실 소파 뒤쪽 벽이 유난히 허전해 보였다. 누군가 집에 놀러 왔을 때 휑한 벽을 보면 괜히 내 인테리어 감각이 들키는 것 같아 며칠 내내 고민을 했다. 거창한 명화나 비싼 작가의 작품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인터넷 쇼핑몰에서 적당히 파스텔톤의 음식 일러스트나 어반 드로잉 같은 걸 사서 걸어볼까 했다. 찾아보니 요즘은 3D 아이콘 느낌의 그래픽 작업물도 많이들 걸어두길래 그것도 잠시 고려해 봤다. 그런데 막상 고르려니 병원 대기실에 걸려 있을 법한 느낌이 나는 것도 같고, 자동차 그림 같은 건 내 취향이랑 너무 먼 것 같아 결정을 못 하겠더라. 그렇게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하며 며칠을 보냈다.
후지필름 인화 서비스로 직접 뽑아본 그림들
결국 기성품 포스터를 사는 대신 직접 마음에 드는 그림 이미지를 찾아보기로 했다. 핀터레스트나 무료 이미지 사이트를 뒤지다가 눈에 들어오는 수채화 느낌의 풍경을 몇 장 골랐다. 옥정호의 작약 꽃밭 같은 자연 풍경도 좋고, 제주 바다의 파르스름한 색감이 담긴 사진들도 괜찮아 보였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후지필름 인화 서비스를 이용해 꽤 괜찮은 질감의 종이에 인화를 신청했다. 비용은 대형 액자 하나 사는 값보다는 저렴했는데, 장당 몇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송받은 인화지를 받아보니 화면으로 볼 때보다 훨씬 색감이 진해서 마음에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샴푸 선반과 액자의 사투
이제 액자를 걸어야 하는데, 이게 또 문제였다. 우리 집 거실 벽은 콘크리트 벽이라 못을 박으려면 드릴이 필요한데, 아파트라 층간 소음 눈치가 보여서 쉽게 드릴을 돌릴 수가 없었다. 결국 꼬꼬핀을 샀는데 이게 생각보다 무게 중심 잡기가 까다롭다. 액자 위치를 잡다가 며칠 전에 사둔 욕실 샴푸 선반이 떠올랐다. 거실 벽에 세워두기엔 너무 지저분해 보이고, 결국 그림과 선반 사이에서 한참을 갈팡질팡했다. 그림이 주는 심미적인 효과를 기대했는데, 벽에 못을 못 박으니 결국 액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살게 되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나름 ‘요즘 감성’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완벽하지 않은 인테리어 결과물
결국 거실에는 인화한 그림 세 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 예쁜 그림이 전시회에 뽑히지 않아도 집에 걸어두면 그만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내 상황이 딱 그렇다. 남들이 보기엔 벽에 걸지 못하고 바닥에 늘어놓은 그림들이 어설퍼 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벽에 깔끔하게 걸린 그림을 상상했지, 이렇게 바닥에 툭툭 던져놓는 인테리어를 계획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퇴근하고 돌아와서 멍하니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름의 위안은 된다. 명함 디자인 샘플처럼 규격화된 예쁜 그림들을 보며 예전에는 미술이 그저 예쁜 것을 만드는 기술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냥 내 공간과 조금 더 친해지는 과정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남아있는 약간의 찜찜함
한 달이 지난 지금, 액자를 살지 아니면 지금처럼 그냥 놔둘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사실 더 예쁜 액자를 찾으려고 며칠을 더 검색해 봤지만, 결국 마음에 쏙 드는 건 가격이 너무 비싸서 다시 닫아버렸다. 적당한 걸 찾자니 나중에 후회할 것 같고, 비싼 걸 사자니 지금 내 인테리어 컨셉과 맞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림을 바닥에 두는 게 정말 멋스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드릴을 쓰기 귀찮아서 타협한 건지 나조차 헷갈린다. 아마 내일쯤 또 마음이 바뀌어 액자를 주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두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공간이 변하는 것만으로도 일단은 충분한 것 같다.

수채화 느낌의 풍경 그림이 옥정호 작약 꽃밭처럼 섬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네요. 정말 딱 맞는 그림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모습이 느껴져서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