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북을 볼 때까지만 해도 즐거웠지
처음 집 리모델링을 시작할 때는 꽤 야심 찼다. 인테리어 관련 커뮤니티에서 본 예쁜 집 사진들을 저장해두고, 마치 내가 대단한 디자이너라도 된 것처럼 구상했다. 특히 거실 벽지 색상은 ‘웜그레이’가 좋을지, 아니면 아예 질감이 느껴지는 ‘샌드 베이지’ 톤으로 갈지 며칠을 고민했다. 견적은 30평대 인테리어 비용을 대충 찾아보고 넉넉히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동네 인테리어 업체 몇 군데를 돌아다녀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예산보다 훨씬 비싼 자재들을 추천해주거나, 아니면 아예 상담 자체가 귀찮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사장님들을 보며 첫 번째 고비를 맞았다. 사실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업체 미팅과 생각지 못한 현장 상황
결국 인스타그램에서 좀 예뻐 보이는 곳에 연락해서 상담을 잡았다. 사무실에 가보니 각종 브랜드 디자인 샘플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선택한 자재들이 조명 인테리어와 어우러져 근사하게 완성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철거를 시작하니 벽 안쪽 상태가 엉망이었다. 누수 흔적도 발견되고, 단열도 거의 안 되어 있는 수준이었다. 평당 가격을 기준으로 생각하던 초반의 예산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예기치 않게 추가 공사비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니 더 이상 벽지 색깔이나 조명 스타일 따위는 중요해지지 않았다. 그냥 기본만이라도 제대로 해서 입주하는 게 목표가 되어버렸다.
결국은 가장 무난한 선택이 정답인가
고민하던 샌드 베이지 벽지는 온데간데없고, 현장 소장님과 상의 끝에 가장 흔한 화이트 톤 실크 벽지로 전체를 도배했다. 조명도 화려한 펜던트 조명 대신 매립등 몇 개만 달았다.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나중에 가구라도 좀 좋은 걸 들여놓으면 괜찮겠지 스스로를 위로했다. 3D프린터로 소품을 만들어서 꾸미면 나만의 공간이 될 거라는 환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깔끔한 마감에 안도하는 내 모습을 보며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리모델링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로망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는 과정인가 싶다.
소음과 분진, 그리고 끝없는 기다림
공사 기간은 4주로 잡았는데, 중간에 자재 수급 문제로 며칠이 지연됐다.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소음 공해로 항의받는 건 기본이었고, 관리실에 들러서 매번 서류 확인하고 양해 구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진 빠지는 일이었다. 공사 현장에 들를 때마다 코를 찌르는 본드 냄새와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 진양호 르네상스 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리모델링을 하시는 분들은 대체 어떻게 견디는 건지 모르겠다. 작은 집 하나 고치는 데도 이렇게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말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묘한 부분들
지금 입주해서 살고 있는데, 사실 아직도 거실 한쪽 몰딩 마감이 미묘하게 들떠 있다. 업체에 연락하면 와서 봐주겠다고 하는데, 또다시 그 먼지 구덩이 속에 들어가서 수리받을 생각을 하니 그냥 포기하고 싶다.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지만, 그래도 텅 빈 집에서 새 벽지 냄새를 맡으며 앉아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긴 하다. 인테리어라는 게 원래 만족 100%가 나오기는 힘든 영역인 것 같다. 나중에 다시 한다면 아마 이번처럼 꼼꼼하게 따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비우고 시작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현관문의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걸 발견했는데, 또 수리 업체를 알아봐야 할지 말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벽지 색깔 고민하는 모습이 정말 공감돼요. 결국 실크 벽지로 바꾸신 게 현명한 선택이었네요.
벽지 색깔 고민 정말 힘들었겠네요. 제가 집 계약할 때 벽 상태 확인하느라 시간 엄청 뺏겼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