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임대 계약 후 뒤늦게 눈에 들어온 노출 배관의 존재
상가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머릿속은 온통 가구 배치나 조명 위치 같은 큼직하고 보기 좋은 그림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을지로3가역 5번 출구 골목 안쪽에 위치한 이 오래된 건물 2층 공간은 보증금이나 월세 조건이 내 예산에 딱 맞았고, 창문이 넓어 채광이 좋다는 점 하나만 보고 덜컥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사를 앞두고 텅 빈 공간에 홀로 서서 구석구석 청소를 시작하자마자, 계약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굵직한 회색 PVC 배관 하나가 유독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바닥을 지나 벽면 모서리를 타고 길게 올라가는 하수 배관이었는데,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은 탁한 회색 빛깔에 군데군데 알 수 없는 얼룩까지 묻어 있어 공간 전체의 인상을 칙칙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냥 커튼이나 화분으로 적당히 가려둘까도 생각했지만, 손님들이 드나드는 동선 바로 옆이라 지나다니며 발에 치일 게 뻔했고 시각적으로도 도저히 흐린 눈으로 넘어가기 어려웠다.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을 주고 싶었던 원래 계획과는 정반대의 불청객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일반 전선 몰딩과 대형 PVC 배관 커버의 규격 차이
처음에는 동네 다이소나 철물점에서 파는 흔한 전선용 쫄대나 바닥 몰딩을 사다가 덮으면 간단히 해결될 줄 알았다. 플라스틱 재질이니 가위나 칼로 대충 잘라서 붙이면 끝날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로 직접 배관의 지름을 재어보고 나서야 그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는지 깨달았다. 배관 자체의 외경은 물론이고, 벽에 고정하기 위해 튀어나온 쇠붙이 브라켓과 꺾이는 부분의 엘보 부속까지 포함하니 부피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흔히 파는 전선 몰딩 중에서 가장 넓은 폭의 제품을 대보아도 턱없이 부족했다. 인터넷을 한참 뒤적거린 끝에야 공장이나 규모가 큰 상업 공간에서 노출 배관을 깔끔하게 마감할 때 쓰는 전용 ‘PVC 배관 커버 몰드 박스’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목재를 사다가 직접 가벽을 세우거나 네모난 박스를 짜서 덮는 방법도 고민해 보았지만, 목수 인건비는 고사하고 얇은 MDF 합판 몇 장과 톱, 타카 같은 장비들을 새로 갖추는 비용을 따져보니 차라리 기성품 커버를 구매해 붙이는 것이 훨씬 경제적으로 보였다.
을지로 자재 골목에서 직접 치수를 재며 찾아낸 전용 몰드 박스
인터넷으로 주문하려니 우리 상가 벽면에 설치된 배관의 꺾임 각도와 부속 크기에 딱 맞는 규격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화면으로만 봐서는 재질의 단단함이나 실제 색감을 가늠하기 어려워, 결국 배관의 대략적인 수치를 적은 종이를 들고 을지로3가역 근처의 자재 골목을 직접 찾아 나섰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PVC 파이프와 부자재들이 가득 쌓인 ‘대성 PVC’라는 간판을 발견하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무뚝뚝한 표정의 사장님께 배관 사진을 보여드리며 어설프게 설명을 늘어놓자, 사장님은 말없이 안쪽 선반에서 묵직한 사각형 모양의 플라스틱 몰드 부속들을 꺼내 보여주셨다. 일반 가정용 쫄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두껍고 단단한 고강도 제품이었는데, 배관 지름을 감안해 폭 70mm짜리 대형 5호 규격의 벽면 사각형 커버를 추천받았다. 직선 구간용 커버 4개와 코너를 연결하는 부속, 그리고 벽면에 부착할 때 쓸 전용 실리콘 접착제까지 한꺼번에 구매했다. 자재비로만 총 24만 원 정도를 지출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지출이 커서 결제하면서도 과연 내가 이걸 제대로 붙일 수 있을지 덜컥 걱정이 앞섰다.
수평이 맞지 않는 콘크리트 바닥에 고정하며 겪은 시행착오
길이가 2미터에 달하는 커버 자재를 승용차에 겨우 싣고 돌아와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금방 끝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작업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우리 상가의 낡은 콘크리트 벽면과 바닥은 겉보기와 달리 미세하게 굴곡이 지고 수평이 맞지 않았다. 일자로 곧게 뻗은 단단한 PVC 몰드를 벽에 대고 붙이려 하니, 한쪽을 꾹 누르면 반대쪽이 들뜨고 틈새가 쩍 벌어지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사장님이 챙겨준 강력 접착제를 잔뜩 바르고 온 힘을 다해 벽에 밀착시키고 있어도, 손을 놓으면 이내 툭 하고 떨어져 버렸다. 결국 콘크리트용 못을 망치로 박아가며 고정하려 했지만, 오래된 옹벽이라 못이 들어가지 않고 휘어지거나 벽면 시멘트가 풀썩거리며 깨져나가기 일쑤였다. 좁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 망치질을 해대느라 무릎과 허리가 비명을 질렀고, 독한 접착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주말 내내 꼬박 이틀 동안 땀을 흘리며 씨름한 끝에야 겨우 배관을 가리는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마감재를 덮고 나서도 여전히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구석들
가장자리에 삐져나온 접착제 찌꺼기를 칼로 긁어내고 먼지를 닦아낸 뒤 멀리서 완성된 모습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면 이전의 찌든 회색 파이프가 가려져 한결 정돈된 것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면 삐뚤빼뚤한 틈새가 너무 선명했다. 벽면의 굴곡 때문에 생긴 5mm에서 10mm 사이의 빈틈을 하얀색 실리콘으로 메워보려 했으나, 초보자의 솜씨라 실리콘 똥이 뭉치고 번져서 오히려 지저분해 보였다. 게다가 단단한 재질이라 가위로 잘리지 않아 쇠톱으로 썰다 보니 잘린 단면이 거칠고 울퉁불퉁해진 것도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목재 가벽을 세우고 깔끔하게 페인트칠을 하는 게 나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완전히 덮어버리긴 했지만 완벽하지 않은 마감 탓에, 일을 마친 지금도 상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그 어설픈 모서리 틈새로 자꾸만 시선이 간다.

사진에 나온 대형 커버, 저런 고강도 재질은 처음 보네요. 벽면 쪽에 어떻게 붙이느냐가 관건이겠어요.
벽면이 그렇게 복잡해서 깜짝 놀랐네요. 예상보다 꼼꼼하게 확인해야 했는데, 늦게 발견한 게 안타깝네요.
이런 문제는 정말 흔하네요. 저도 비슷한 경험 때문에 벽에 판자를 덧대고 작업했었거든요.
벽에 쇠붙이 브라켓을 고정하려고 쫄대를 억지로 붙인 거, 정말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정도로 좁은 공간에 낑궈야 하는 부분까지 고려하면 훨씬 복잡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