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칠이면 다 똑같은 줄 알았지
처음에는 단순히 셀프 인테리어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벽지를 바르거나 가구를 리폼하는 건 재밌는데, 이상하게 페인트만 칠하면 꼭 끝이 지저분했다. 뭐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가 싶어서 덜컥 도장기능사 시험을 알아보게 된 건데, 이게 생각보다 단순한 취미 영역이 아니었다. 등록비가 10만 원대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재료비랑 학원 수강료까지 합치면 비용이 꽤 들어간다. 무작정 뛰어들기 전에 이런 자격증이 실질적으로 내 방 꾸미기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은 계속 남았다.
영등포에서 마주한 낯선 냄새
청년건축학교나 이런저런 직업전문학교들이 자격증 대비반을 운영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평일 낮에 짬을 내서 실습장을 찾아갔는데, 냄새부터가 다르더라. 락카랑 신나 냄새가 섞인 특유의 텁텁한 공기가 훅 끼치는데, 순간 ‘아, 이거 그냥 붓질 몇 번 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시험장에 가면 수험생들이 다들 비장한 표정으로 붓을 잡고 있는데, 그 틈에 껴서 멍하니 도면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왜 이걸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특히나 조적기능사나 미장 같은 옆자리 시험장의 흙먼지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선택한 도장이라는 분야가 그나마 낫다 싶다가도 섬세한 라인 작업 때문에 뒷목이 당기는 건 똑같았다.
도면과 현실의 간극
시험 준비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건 도면대로 라인을 따는 거였다. 선 하나 삐져나가는 거, 페인트 양 조절 못 해서 흘러내리는 거, 이런 게 실점 요인이다. 집에서 취미로 할 때는 그냥 덧칠하면 그만이었는데, 여긴 덧칠하면 바로 탈락이다. 대략 6시간 정도 이어지는 시험 시간 동안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서서 붓만 잡고 있어야 하는데, 다리가 퉁퉁 붓는 건 기본이다. 학원에서 연습할 때는 강사님이 ‘여기는 이만큼 덜어내야 해요’라고 팁을 주는데, 막상 시험장 가면 그게 내 손에서 제대로 구현이 안 된다. 손이 덜덜 떨리는데 이걸로 합격은 할 수 있을까.
땀 냄새와 맞바꾼 종이 한 장
결국 자격증을 따긴 땄다. 남들 말로는 건축 초급 기술자 경력 쌓으려면 이게 필수라고 하던데, 사실 나는 그런 거창한 목표보다는 그냥 ‘내 집을 망치지 않고 칠할 수 있는 능력’ 정도를 원했던 것 같다. 합격 통보받고 나니 기분은 좋았는데, 정작 집에 돌아와서 남은 페인트 통을 보니 다시 붓을 잡기가 겁난다. 시험 준비하면서 배운 건 ‘내가 하면 전문가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현실 자각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벽 모서리에 테이핑하고 라인 따는 법만큼은 확실히 배웠으니, 예전처럼 뭉툭하게 페인트가 뭉치는 일은 줄지 않을까.
남겨진 궁금증들
도장 말고 미장이나 조경도 나중에 해볼까 싶다가도, 한 번 겪어보니 기술직이라는 게 겉보기에 비해 훨씬 고된 노동이라는 걸 체감하게 된다. 요즘은 AI나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라는데, 사람이 직접 손으로 붓질해서 얻는 그 미묘한 질감까지 기계가 흉내 낼 수 있을까. 시험장 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하신 분들이 왜 그렇게 자격증은 기본일 뿐이라고 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아직도 내 방 베란다 한쪽은 지난번 실습 연습 삼아 칠해둔 곳이 얼룩덜룩한데, 이걸 다시 칠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둘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렸다.

붓질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보니 정말 힘들었겠네요. 덧칠만 가능한 취미와는 너무 다른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